안녕하세요, 필기 연재를 하는 동안 신청받은 주제 중 오늘부터 다룰 주제는 바로 "조기교육"입니다. 익명의 독자님께서 신청해주셨어요. 원래 영어에만 한정해서 쓰려고 했는데, 영어 조기교육에 다른 조기교육 요소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받았던 조기교육 전반에 대해서 쓰게 되었어요. 벌써 오래 전 일이라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구분은 무의미할 것 같네요. 또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연재일 것 같아요.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드릴 말씀은, 저는 교육 전공자도 아니고 현재 교직에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제가 이야기하는 조기교육이 절대로 옳다고 보여드리는 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제목처럼, 제가 받은 조기교육을 '학습자'인 제 입장에서, '체험기' 형태로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그러니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조기교육을 받아서 이렇게 되었구나, 스스로 조기교육이 이런 점에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구나" 정도의 차원에서 읽어주세요.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저희 엄마의 '맞춤형 조기교육 원칙'에 대해서 먼저 소개합니다. 저희 엄마는 매사에 본인만의 원칙이 철저한 분이세요. 그래서 앞으로 소개할 조기교육 체험기가 모두 이 원칙에 맞추어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먼저 이 원칙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1. 아이는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이 공부라는 것을 모르게 하라.


이건 진짜 교묘한 부분이에요. 흔히 '놀이처럼 공부해라'라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잖아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공부하는 줄 모르게 속이라는 말 같아요. 저는 제가 받은 것이 조기교육이라는 것을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았거든요. 그 전까지는 그저 '어 난 어릴 때 엄청 놀기만 했는데? 아무것도 안다녔음 -ㅁ-' 이렇게 생각했어요. 실제로 어떤 기관에 다니지 않고 늘 학교&집이었거든요. 그만큼, 어느 정도 머리가 큰 후에야 "아, 내가 그 때 한 것이 나름대로 교육을 받은 것이구나"라고 깨달을 정도로, 아이 입장에서는 절대로 그게 교육이라거나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수준으로, 일상 속에 스며들게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중에도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일상인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핵심은,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다 "노는 것"인 줄 알게끔, 철저하고 또 교묘하게 아이를 끊임없이 속여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어린 시절 덕질의 흔적이 알고보니 조기교육의 일환이었다능..;;




2. 아이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하라. 


아래 사진은 10개월쯤 되었을 때 제 모습이에요. 저희 엄마는 외동이었던 저를 끊임없이 관찰했다고 하세요. 당시에 사실 저는 집안 식구들이 청각장애가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저 사진 속 모습처럼 뭐를 하나 보고 있으면 옆에서 불러도 못 들었대요. 또 말도 늦게 했고요. 옹알이도 좀 늦었어요. 그래서 청각에 문제가 있나 했는데, 다행히 검사결과 청각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깨어 있을 때는 얌전히 잘 앉아있는 편이었고, 책을 펴줘도 찢거나 먹지 않았고, 잠은 신생아 때부터도 정말 안 잤대요. 지금도 규칙적인 아침형 인간은 못 되고, 공부도 좀 몰아서 하는 걸 좋아하는 대신 한 번 앉아있을 때 집중력이 좋은 편이에요. 만약 제가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쪽에 호기심이 많고, 또 잠도 규칙적으로 잘 자는 아이였다면 제가 받은 조기교육의 방향도 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단지 저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던 거죠. 저희 엄마는 제가 어떤 성향을 타고났는지를 사진 속 모습처럼 어릴 때부터 관찰하였고, 청각에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였지만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나서는 인내심있게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어요. 


*저는 저희 엄마가 전업주부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 혜택을 많이 받았지만.. 사실 24시간 양육자가 반드시 여성, 어머니여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아빠여도, 할머니/할아버지, 이모, 삼촌, 형제자매여도 충분히 훌륭한 케어를 받을 수 있고, 또 반드시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교육기관을 통해서도 아이에게 필요한 케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아이에게 얼마나 신경을 쓰냐, 얼마나 온전히 집중해서 아이를 관찰해서 그 아이의 성향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느냐의 문제인 것이지, 그게 누구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3. 아이의 성향에 철저하게 맞추어라. 


2번 원칙에서처럼 관찰을 통해서 제 성향을 파악하신 저희 엄마는 철저하게 제 성향에 맞추어 주셨어요.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냥 말이 느린 아이거니 하고 기다렸고, 앉아서 오랜 시간 뭘 하는 걸 좋아하니까 계속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강제로 무언가를 금지시키거나 그만하게 하지 않았다고 해요. 대신 계속 같이 놀아주었답니다. 결국 아이의 성향에 맞추어준다는 것은 양육자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 것 같기도 해요. 




4. 절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라.



3번 원칙과 이어지는 내용인데요, 저희 엄마는 절대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어요. 여태까지 크면서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오히려 엄마가 그만 자라고 제 방 불을 끄고 도망간ㅋㅋ 적은 가끔 있어요. 대신 저희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것은 한이 맺히지 않도록 질릴 때까지 하게 놔두었고, 싫어하는 것은 절대 시키지 않으셨어요. 지금도 저희 엄마의 모토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일만 해도 인생은 짧다"예요. 


물론 이렇게 키우면 애가 너무 망가지지 않겠느냐 싶은데요, 일단 '한이 맺히지 않게 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나 어릴 때 이거 갖고 싶었는데 못 가졌었어, 나 어릴 때 이거 하고 싶었는데 그 때 못했어" 이런 마음이 든 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자라면서 한 맺힌 것이 없다는 점이 "내가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 근원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금수저여서 다 가지고 살았던 건 아니고요ㅋㅋ 완전 아기 때야 뭐 그렇게 갖고 싶은 게 있었겠어요ㅋㅋ 그 때는 그저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잘 되면 한 맺히지 않는 거죠. 나중에 말귀 알아들을 만큼 좀 큰 후에, 어린애가 자본주의 사회에 물들기ㅠㅠ 시작하면서 갖고 싶은 게 생길 때가 문제죠. 하지만 그 때부터는 집안이 어려운 경우에는 집안 사정을 제가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다 오픈하셨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우선 순위를 매겨서 그걸 사도록 하자, 이런 식으로 납득시켜 주셨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경제 사정이 다시 좋아지면 이전에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사서 채워주셨어요. 제가 적어두거나 한 것도 아닌데 그걸 다 기억해서 나중에 사주신 거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알잖아요, 지금도 정말 갖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를.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나중에 사게 될 때에는 당연히 사는 항목이 줄어들었어요. 또, 이게 단순히 "지금 돈 없으니까 못 사!" 이런 식으로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만큼 이야기를 해주셨고, 제가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엄마가 다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니까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나를 알아주는 것은 엄마 뿐입니다'였죠.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질릴 때까지 하게 하는 것, 이것도 독특했어요. 보통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있어도 밥을 먹이거나 잠을 재우기 위해, 그걸 저지하잖아요? 하지만 제 경우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희 엄마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게 되어 있다"라고 하세요. 또 제가 어릴 때부터 성격이 집요했는데 꼭 "행복하게 살았대요"가 나올 때까지 책을 다 읽어달라고 하면 참고 끝까지 다 읽어주셨대요. 같은 책을 또 "행복하게 살았대요"까지 또또또!! 읽어달라고 해도 계속 읽어주고요. 



5. 교육과정에 불필요한 지연이나 끊김이 없게 하라.


이 때 말하는 지연이나 끊김은 아이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상황이나 양육자의 케어에서 비롯되는 지연/끊김을 말해요. 1단계의 교재를 아이가 80% 정도 끝낼 때 쯤 되면 2단계 교재를 미리 사서 쓰윽 미리 들이밀어 놓고 (하지만 이 때에도 호들갑스럽게 다음 것이 왔다고 할 것은 없음. 아이는 이게 공부인 줄 몰라야 하므로... 아이 입장에서는 새 장난감이 온 줄 알아서 펴봤는데 아직 "이게 뭐지?"하는 수준이어야 함) 또 2단계 교재가 80% 정도 끝날 때 즈음 다시 3단계 교재를 미리 사놓는 식으로요.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지지만, 교재는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거죠. 이 때 교재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구, 시청각 자료 등을 모두 포함해요. 그래서 전집 같은 건 한 권씩 사서 모으기보다 전집 형태로 다 샀어요. 


이렇게 준비해두면 다음 단계 교재가 늘 집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과정이 끊어진다거나 더 어려운 내용으로 넘어간다는 인식을 못한 채로 "음 저기 마루 책꽂이에 얼마 전에 새로 온 이쁜 책이 있는데 저게 이쁘니까 저거 봐야지" 하다가 "어 근데 이쁜 책이 어렵다ㅠ 다시 보던 거 더 봐야지"하다가 "오늘은 다시 이쁜 책을 봐야지"하면서 점점 새 교재로 넘어가게 되어요. 그리고 이전 교재도 바로 처분하거나 넣어두지 않았어요. "오늘은 내가 예전에 읽던 저 책을 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들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요. (그게 복습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아주 앞 단계 책들은 아이 입장에서 시시해서 더 이상 보지 않게 되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보았던 어린 시절 교재들이, 그 때 가지고 있던 장난감보다 더 정든 것이 되었어요. 



내일부터는 시기별 조기교육 경험에 대해서 쓸 예정이에요. '조기교육'이 유아기 교육을 의미하기도 하고 단지 적기보다 빠른 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는데, 넓게 잡아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의 내용을 다루려고 합니다. 늘 노느라 하루가 바빴던 기억인데..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럼 오늘은 이만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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