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기교육 체험기] 번외편 글입니다. 단순히 조기교육 체험에 머무르는 내용이 아니라 조기교육으로 인해서 어려웠던 점을 써보려고 해요. 특히 제가 이후에 영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쓰고 싶어서 '번외편'이라고 제목을 따로 뽑았습니다. 일단 먼저 우리나라에 있는 영어 교육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좀 짚고 넘어갈게요. 제가 영어 공부를 하면서 겪은 혼란들과 관련이 있거든요. 



(1) 우리나라에 있는 세 가지 영어 교육 방식


제가 생각할 때 현재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영어 교육 방식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교육학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적는 이야기는 그냥 제가 보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적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어쨌거나, 그 세 가지 방식이란 다음과 같아요. 


첫 번째는 교과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에요. (뉘예 뉘예..)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방법이죠. 단어를 외우고 어법을 외우고 지문을 외워서 시험 문제가 원하는 답을 아주 착하게 잘 골라내는 거예요. 이걸 교재나 학원으로 나타내면, 입시 위주의 모든 문제집과 학원들이 여기에 해당되어요. 유명한 인강들도 마찬가지고요. 단어나 어법을 잘 알게 될 수는 있지만 (그조차도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영어를 20년동안 배워도 나중에 외국인 앞에서 입도 뻥긋 못한다고 항상 비판받는 그 교육방식이에요. 


두 번째는 ESL 방식이에요. English as a Second Language를 말하는데, 말그대로 영어가 제2언어가 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방식이에요. 예를 들면 여러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 사이에 영어로만 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어를 배우는 방식을 말해요. 미국이 떠오르죠? 이 방식에서는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에요. 굳이 찾아보자면 회화를 강조하는, 실용 영어 위주이면서 영어로만 소통해야 하고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는 기관이나 수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이런 수업도 엄밀히 말하면 EFL 방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세 번째는 EFL 방식이에요.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의 약자이고, 우리나라처럼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에 놓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 방식이에요. 일단 당장 생활에서 영어를 쓸 필요는 없으니까 ESL 학생들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약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동기부여가 중요해지고요, 또 실제로 연습할 상황이 더 많이 주어져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이 세 가지 방식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린 아이들이 미국식 교과서와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지고 온 기관에서 언어를 배울 경우 ESL 교육 방식을 따르게 되겠죠. 그들의 현재 환경은 EFL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ESL과 EFL 방식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하나로 묶고 이들 방식과 첫 번째 주입식 교과 교육 방식 사이의 차이점을 살펴본다면, ESL과 EFL 방식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고루 발전시키고자 하는 반면, 첫 번째 방식은 듣기와 읽기 위주로만 시험에서 보고 그마저도 암기로 환원된다는 점이에요. 교과 위주의 학습도 결국 EFL 방식의 일종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받고 있는 교육 내용은 영어권 출판사에서 나오는 EFL 교재의 내용과는 아주 다르죠. 


일관성있는 환경에서 세 가지 방식 중 어느 하나를 일관적으로 배우고 살아가면 문제가 없을 텐데,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는 학습자가 어느 한 교육방식으로 배우다가 결국은 입시를 위해서 첫 번째 방식으로 갈아타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혼란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제 경우 EFL방식에서 교과학습으로 넘어갈 때 적응을 잘 못했어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서도 이 세 가지 방식의 혼재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학생들이 있었고요. 그렇다고 교과학습 방식만 계속한 경우는 동기부여도 부족하고 말/듣/읽/쓰가 불균형적으로 발달할 거예요. 차라리 평생 주입식 교육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면 아예 영어가 별 필요가 없을텐데 또 세계화 시대이니 그것도 아니고요. 



(2) 나의 조기교육 환경: EFL 방식



저는 우리나라가 EFL 환경이므로 영어권 출판사에서 나온 EFL 교재를 통해서 EFL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 접했던 웅진 해피토크도 EFL 교재였어요. 초등학생이 되면서 접했던 개인 과외 교재로 썼던 코스북은 위의 저 두 개인데요, AET는 ESL 교재이고, Let's Go는 EFL 교재에요. Let's Go는 EFL 교재 중에서도 20년 간 거의 탑으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교재이고, 지금은 4판까지 나왔어요. 저는 1판을 보았고요. AET만 ESL 교재였는데, 제가 지루해해서 금방 교재를 Let's Go로 바꿨어요. 정리하자면 ESL 교재는 1년 정도 잠깐 본 것뿐이고, 결국 태어나서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EFL 방식으로 영어를 배웠어요. 초등학교도 사립 초등학교였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하는 수업이나 방과후 수업 내용이 EFL 방식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EFL 교재는 주로 영국 대학 출판사들에서 많이 나와요. 옥스포드와 캠브릿지 출판사요. 미국의 경우 환경이 ESL이기 때문에 ESL 교재가 더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영국 대학 출판사들에서 나오는 교재들이 비영어권 국가의 영어 학습자를 위한 교재로 더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들이 많고요. 



제가 처음으로 보았던 어법 교재에요. 지금도 유명한 English Grammar in Use죠. 요즘은 미국영어판도 나오고 한국어판도 나왔어요. 해커스에서 거의 베끼다시피 한 책도 나온 것 같더라고요. 저는 영국판 2판을 봤어요. 이 다음 버전인 보라색 Advanced Grammar in Use도 보았고요. (다른 책꽂이에 있어서 사진을 못 찍었어요) 난이도는 빨강-파랑-보라 순이었어요. 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외국어 전문서점을 통해서였어요. 여느 때처럼 엄마 손잡고 놀러갔다가 평대에 인기 도서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본 거죠. 이거 세 권을 중고등학생 때 모르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찾아보았어요.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시기에 발견한 책들 중에 좋은 책들이 많았어요. 최고의 영작문 교재인 Elements of Style도 이 당시에 샀었고요. 



(3) EFL 방식에서 교과 학습으로


a. 직면한 문제점


중학교에 간 다음이 문제였어요. 초등학생 때까지 EFL 교육 방식을 굳이 벗어날 이유가 없었는데, 수업 시간에 무슨 부정사니 무슨 분사니 이런 말이 계속 나오는 건데 그 때 처음 들어봤어요. 하지만 그런 것 몰라도 시험 점수는 잘 나오더라고요.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한자를 싫어해서;; (네.. 지금도 그 극복기가 이 블로그의 다른 카테고리에서 진행 중이죠..ㅠㅠ)그 한자어로 된 문법 용어들이 진짜 너무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께서 문법 내용을 말씀하시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후 문제만 풀었어요. 답은 맞췄으니까. 그렇게 수업을 안 들었더니 "be 동사"라는 걸 고등학생 때 알게 되었어요. 물론 am/is/are, was/were, been 이걸 모른 건 아니었어요. 이 동사들이 be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이것들을 묶어서 우리말로 "'비'동사"라고 말하는 게 바로 그 "be" 동사라는 걸 고등학교 1학년 때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태어나서 만 13년은 오로지 EFL 교육만 받았고, 그 이후로도 3년을 더 EFL 방식을 고집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수능식 교과학습에 노출되기 시작한 거죠. 


동시에 고등학교 1학년 때 밑천도 떨어졌어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보기 전까지 영어는 손 안대고 가도 백 점이 나오는 과목이었는데, 처음으로 그 시험에서 88점이 나왔어요. 우습게 보고 공부를 안한 탓이었죠. 그 전까지는 어릴 때 배운 밑천으로 커버가 가능했던 건데, 이후에는 어휘량과 어법이 더 이상 그 밑천만으로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는 영어 수업 단위수가 많아지니까 문법 수업을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와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두 분 다 영어 선생님이기도 했고요. 듣다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 내가 봤던 그게 이거였어?" 하고요. 


아마 저말고도,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영어 엄청 시켰고 영어유치원부터 원어민 교사 있는 학원까지 영어를 엄청 시켰는데 애가 학년 올라가더니 영어를 싫어하고 못하더라", 하는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겪었을지도 몰라요. 혹시 주변에 이런 아이들 있으면 한 번 관찰해보세요. 저도 이 시기에 손 놓았으면 이거 극복 못하고 수능 영어도 망쳤을 것 같아요. 실력도 조기교육 수준에서 머물렀을 거고요. 



b. 극복 방법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EFL 방식으로 배운 지식을 하나씩 어떻게 수능형으로 적용시킬지에 주목해서 공부를 했어요. 우선 우리나라 문법책에서 사용하는 어법 용어들을 EFL 교재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매칭해서 외우고, 제가 EFL 교재에서 이해한 내용이 우리나라 문법책에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를 거꾸로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원서"와 "성문종합영어" 방식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저 자신을 적응시켰어요. 단어는 몰아치기와 벼락치기로 두 달 정도 잡고 외웠고요. 다행히 막상 이렇게 방향을 잡고 나니까 이전에 EFL 방식의 조기교육을 통해서 기초가 쌓여있었기 때문에 단어도 금방 많이 외우고 어법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어요. 수능식 문제집 말고 저한테 맞는 교재를 찾는 것이 좀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법은 그냥 원서로 봤고 (Grammar in Use 시리즈 말고 다른 것도 몇 권 봤는데, Grammar in Use가 저한테 제일 잘 맞아서 미국영어판으로 한 권씩 더 사서 학교 사물함에 두고 다녔어요), 기존에 그냥 읽던 원서나 이미 외워서 기억하던 영화 대사&노래 가사들을 다시 볼 때 (여전히 덕질은 멈추지 않았어요..-_-) 어법적으로 분석해보기 시작했어요. 단어는 단어장을 따로 돌리지 않고 접하는 문제집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다 외웠어요. 다행히 공부 기억력과 암기력이 좋은 편이었고, 또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외우는 게 아니라 의미를 바로 떠올리니까 글을 읽는 속도가 빨라서, 문제집 푸는 양을 늘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어법과 단어가 해결된 이후에는 양으로 밀었어요(저희 때는 지금 같은 EBS 수능 연계가 없어서 사설 문제집을 많이 풀 수 있었어요). 고3 2학기에는 마음 먹으면 하루에 영어 문제집 반 권 정도도 풀 수 있었거든요. 또 듣기는 이미 수능 수준 이상이었기 때문에 듣기에서 시간을 잡아먹거나 점수가 깎이는 일이 전혀 없었던 것도 다행인 일이었고요. 



c. 결론


결국 EFL 방식의 조기교육이 기초를 잘 잡아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한 교과 위주의 주입식 교육 방식에 적응하는 문제적어도 한 번 이상은 생긴다는 부작용이 있어요. 뭐 부작용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인 것 같아요. 어쨌거나 이 시기를 잘 넘겨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단어와 문장을 습득하고 어법을 이해하는지를 파악하게 되면 (이것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겠죠, 시간관리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요) 자신만의 외국어 공부 방법을 찾게 되어서 이후로도 문제가 없지만, 이 시기를 잘 못 넘길 경우 이전의 조기교육까지 다 쓸모없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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