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는 발제문 형식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해요. 첫 순서로로 줄글형 발제문을 들고 왔어요. 줄글형 발제문은 좀 "모 아니면 도" 인 것 같아서,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도'와 '모'의 기준에서 풀어볼게요. 




1. '도'인 줄글형 발제문 (1): 미완성 상태의 (발)번역


줄글형 발제문을 쓰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경우인 것 같아요. 하나는 정말 주어진 텍스트를 본인이 다 소화해서,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할 때고요, 다른 하나는 아예 이해나 요약이 안 되는 수준인거죠. 전자라면 상당한 고수지만, 후자일 경우 줄글형 발제문은 발제문이 아닌 "미완성 상태의 (발)번역"에 불과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예요. 제가 이 연재 첫 번째 글에서 완역 연습을 하게 된 게 저 스스로 요약 정리를 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라고 말씀드렸었죠? 바로 이 수준에서 그나마 완역도 못 해가는 게 바로 문제적인 줄글형 발제문이에요. 


대학원에서 발제를 시키는 이유는, 스스로 텍스트를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 능력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스스로 발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거예요. 거기에 학생이 수업을 이끌어간다는 책임감을 더해주는 것도 있겠죠. 아무래도 책임감이 있으면 듣는/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생각해보고 자료도 보충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요약이 전혀 되지 않고 단순 번역에 그치는 발제문은 사실 아무런 효과가 없어요. 발제자 본인도 아무것도 못 얻은 거고 - 텍스트를 소화하지 못한 상태이니 - 다른 수강생 입장에서는 두 가지 상황 중 하나예요. 그 수강생이 발제자보다 실력이 좋아서 텍스트를 다 소화해 온 경우에는 자기가 이미 건너 뛴 단계를, 그것도 아주 허접한 수준으로 듣고 앉아 있어야 하니 엄청난 시간 낭비일테죠. 만약 그 수강생도 마찬가지로 발제자처럼 텍스트를 소화하지 못한 학생이라면, 그 학생이 해야 하는 삽질을 발제자가 같이 삽질해주고 있는 형편이고요.  


그래도 완역이라도 해가면 그 번역을 보고 사람들이 사전을 찾아보는 수고라도 덜 수 있을 거예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에요. 최악의 상황은 이런 상황이에요. 자기 실력과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양과 시간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 알지 못해서, 몇 주 전부터 텍스트를 잡았으나 완역도 다 못해서 뒷부분은 미완성인 번역문을, 그조차도 적절한 번역어도 고르지 못한 발번역만을 들고 가는 거요. 이건 진짜 본인에게도,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글을 그 자리에서 읽어서 이해도 못하고 완역할 실력도 안 된다면.. 번역을 맡기기라도 해서 자기 책임은 다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2. '도'인 줄글형 발제문 (2): 완역본 


완역만 해 온 경우는 미완성 발번역을 들고 온 것보다는 낫죠. 하지만 이 역시 남들에게 사전 찾을 수고를 덜어준다는 의미 외에는 다른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아요. 



3. '도'인 줄글형 발제문 (3): 발췌 번역 + 저자는~" 요약형태


가장 흔한 형태의 발제문이에요. 인문대 수업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발제문이죠. 아래 사진 같은 발제문이 제일 흔해요. 



제가 석사 첫 학기에, 이전 겨울 방학동안 완역해 둔 자료를 참고로 해서 쓴 발제문이에요. 나름 '저자는 ~~한다'라고 쓴 걸 보면 글을 쓰는 주체는 발제자 본인이고, 다루고 있는 대상이 저자의 텍스트임을 밝히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보면 완역을 거칠게 편집해서 발췌하고, 단락별로 그 내용을 '저자는 ~~한다'라고 요약만 하고 있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해서, 시간 내에 맞출 수 있도록 쓴 것이니 가장 기본은 지킨 발제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문대 대학원생이라면 이 형태를 제일 많이 봤을 거예요. 그리고 아마 발제문의 진화단계에서 가장 첫 단계에 해당하는 발제문일 거예요. (피츄-피카츄-라이츄 중에 이 정도가 피츄?ㅋㅋㅋ 1과 2는 발제문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4. '모'인 줄글형 발제문 (1): 하나의 완결된 소개글


줄글형 발제문의 가장 큰 특징은 이 발제문 전체가 하나의 '글'이라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모'인 수준의 줄글형 발제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완결된 글이어야 해요. 단락별로 끊어져서 내용만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를 갖춘 하나의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위 사진은 제가 석사 4학기에 썼던 발제문이에요. 석사 첫 학기보다는 나아졌죠. 어디가 나아졌냐면요, 서론과 글의 구성을 밝히는 부분이에요. 발제자 나름대로 글에 대한 평가를 하고 글의 특징을 밝히고 있고, 각 절의 내용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 밝히고 있어요. 최소한 저자가 어떤 의도로 글을 어떻게 구성했고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는 이해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자기 말로 다시 풀어서 쓰고 있죠. 



5. '모'인 줄글형 발제문 (2): 하나의 소논문 a.k.a. "만렙 줄글형 발제문"


줄글형 발제문은 '글'이기 때문에, 최대한 완성된 글의 형태를 갖출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가장 마지막 단계(라이츄?)의 줄글형 발제문은 아예 하나의 소논문을 써가는 형식이에요. 제 블로그를 보거나 실제로 저랑 같이 수업을 들은 많은 분들이 '평행다단'형태의 발제문을 발제문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짜 발제의 끝판왕은 이 수준의 줄글형 발제문인 것 같아요. 



위 사진은 박사 4학기 때의 발제문이에요. 분량도 A4 18쪽인데 - 당연히 발제 할 때에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좀 건너뛰었음 - 제목도 따로 붙였고, 내용 전체를 재구성하고 있고, 제가 발제를 맡은 챕터뿐 아니라 앞 뒤 챕터와 연결해서 저자의 전체적인 전략을 살펴보고, 내용 정리를 제시하고, 마지막 4페이지는 제 의견과 비판의 초고였어요. 이 정도면 기말 페이퍼로 내도 되는 내용인데 (흑흑 그랬으면 일을 적게 했을텐데ㅠㅠ 사서고생했어ㅠㅠ), 이걸 아예 발제문으로 들고 간 거예요.


이 정도 내용의 발제문을 들고 간다면 발제자가 맡은 책임을 충분히 한 것이라고 볼 것 같아요. 일단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고 소화해서 자기 글로 써서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이니 내용 전달에 대한 부분은 당연히 만족시켰고, 발제자의 그러한 이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도 들을 수 있으니 발제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해석 - 영어 해석이 아니라 이론에 대한 해석 - 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타당성을 따져볼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고, 발제자가 저자에 대해서 제시하는 비판도 도마 위에 올라서 다른 수강생들이나 교수님의 평가를 들을 수 있고, 수강생들 입장에서도 하나의 글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발제자의 의견 자체에 대한 비판도 가능할 거고요. 


사실 다른 형태의 발제문은 이 수준까지는 못 나가는 것 같아요. 아무리 표가 화려하고 그림이 한 눈에 들어와도, 궁극적으로 자기 생각은 글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다른 형태의 발제문에서는 발제자의 생각이나 글에 대한 비판 부분이 빠지게 되니까요. 저에게 평행다단+시각화 발제문은 어찌보면.. 이 만렙 발제문의 바로 전 단계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학기 순으로도 "쩌리 줄글형 발제문(석사1학기) -> 요약형 발제문(석사2학기~4학기) -> 평행다단+시각화 발제문(박사1학기~3학기) -> 만렙 줄글형 발제문(박사4학기)" 이렇게 발전했던 것 같고요. 


*위 18쪽짜리 발제문은 그 학기 말에 기말 페이퍼로 한 번 더 발전시키고, 다시 한 번 손봐서 결국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으로 진화했답니다. (앗싸 라이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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